최근에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누난 내게 여자야〉를 보다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한 사람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발레리나 박예은.

무대 위에서 보았던 얼굴은 시간이 지나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습니다.
솔리스트 때부터 눈여겨보다가 2019년쯤 수석 무용수로 승급하며 본격적으로 주역을 맡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발랄하고 맑은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작품들에서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약 1년 정도, 그녀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공연을 계속 보며 개인적으로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대 위의 박예은은 늘 “힘들다”는 느낌보다 “가볍다”는 인상이 먼저였습니다.
발레라는 장르가 본질적으로 고통과 단련 위에 서 있는 예술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움직임은 이상하게도 관객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습니다. 밝고 단정하고, 조금은 소녀 같고, 그래서 더 오래 보고 싶어지는 무대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가 다니는 피부과 사람을 알게 되어 사인을 부탁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받은 사인은 아직도 작은 기념품처럼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단순히 “팬이라서” 기뻤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시절의 시간 자체를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딱 1년쯤이었을까요.
주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무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인스타그램 피드로만 “아,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조용히 생존 신고를 확인하는 정도가 되었고, 그렇게 기억 속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송 속에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무대 위 수석 무용수의 단단한 존재감보다는, 조금은 평범하고 조심스럽고 인간적인 얼굴이 더 먼저 보였습니다. 발레가 얼마나 힘든 예술인지 알고 있기에, 내려놓음이 이상하지도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는 건 왜일까요.
아직 프로그램의 뒷부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연이 이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한때 누군가의 무대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공연 일정을 기억하고, 커튼콜을 함께 바라보던 시간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헛헛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나 자신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대 위에서 빛나던 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내가 어떤 순간에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 기억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은 박예은이라는 발레리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때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억 하나쯤 가슴에 남아 있는 삶이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그렇게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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