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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프리뷰&리뷰

혼돈의시대 다시보는 <지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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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코로나 시대를 지나 혼돈의 시대에 다시 보는 19세기 낭만발레

 

 

Love, 사랑

Death, 죽음

Vengence, 복수

Salvation. 구원

 

고전발레 ‘지젤’은 귀족 신분을 숨긴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시골 처녀 지젤이 진실을 알게 되고 죽은 뒤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짓, 사랑, 질투, 진실, 고통, 죽음, 용서, 순수...”

 

크게 키워드로 요약한 지젤의 줄거리를 보면 이해가 될 듯 합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을 대표하는 단어들이기도 하면서도 춤과 음악으로만 그 주제를 풀어내고 무용수들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큰 감동이 다가올 지 모릅니다.

 

지젤, 겉으로 보이는 그녀는 순수하다고만 보는 관점이 있지만, 내 눈에는 그 뿐만이 아니라 심성이 강한 여자인 것 같다. 그 때문에 180여년이 지나서도 그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젤, 그녀는 순수했다.

쾌활하고 명랑한 시골 처녀였다. 알브레히트가 아니었다면 자신과 같이 순수한 청년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곤 하나, 순수한 사랑이 사실은 거짓과 배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버릴 정도로 그녀는 맑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2막에서는 슬픔을 가진 윌리의 모습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을 연기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답답한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사랑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죽어서까지 지키는 모습은 요즘같은 세상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보입니다.

 

화려한 겉모습에 쉽게 빠져들고,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제대로 보지 못하며 이별의 끝에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못지는 것이며, 어쩌면 그런 모습에서 화려한 발레 연기보다도 더욱 내게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때로는 가장 힘든 일이 될 수도 있고 이런저런 노화로 인한 변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얼마전 동네 길에서 아직은 젊어보이는 처자가 해맑은 모습으로 어떤 남자의 부축을 받고 거니는 것을 보니 어떤 이유에서 갑작스런 신체의 불편함으로 보였고 그래도 다행히 거니는 것을 보니 다행스럽겠지만 옆에서 부축하는 남자는 아이를 보살피듯 함께해주는 상황인데 어쩌면 그 처자의 얼굴이 얼마나 해맑은지 가끔 생각이 나네요.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생길 수 있는 그런 일 그리고 함께하는 것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한 남자의 마음이 한 여자에게 향해도 인연은 따로 있나 봅니다. 지젤을 향한 힐라리온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야기 속 삼각관계에서 안타까운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장 불쌍한 캐릭터는 힐라리온이라는게 대다수 팬들의 중론이다. 알브레히트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지젤만 사랑했는데 지젤은 사망하고 알브레히트는 자신이 귀족이란 사실을 알린 힐라리온 때문에 지젤이 죽었다고 하질 않나, 무덤에 찾아갔더니 배신자 알브레히트와는 달리 지젤 머리카락도 못보고 윌리들에게 죽음을 당하질 않나. “

 

그럼 알브레히트는 어떻게 보여지는가?

 

“연출 중의 하나였겠지만, 죽은 지젤을 뒤로하고(아마 슬픔에 겨워서 그런 것이겠지만) 달아나는 알브레히트 뒤를 쫓아가고 싶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그게. 붙잡아서 다시 지젤을 살려내라고 다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시대에는 귀족과 평민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평민으로 위장해 지젤에게 접근했으리라. 여느 귀족이 그렇듯이 집안이 맺어준 약혼녀가 있을지라도 지젤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얼마나 지젤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는지는 관계없이, 사실을 숨기고 지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비.겁.했.다.”

 

소위 조금 모자란 남자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왜냐면 그또한 지젤을 순수하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해주고 싶다. 그리고, 운명적 만남이었던 지젤의 영혼에 의해 구원을 당하고 남은 삶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그는 온갖 인생의 무거움을 안고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지젤의 희생으로 숭고한 사랑을 겪게 되었고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걸 뒤로 하고 살아가야 하는 2막 이후의 혼자만의 인생은 아마도 절망적인 것일 것이다. 그런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사람은 운명의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과 같은 혼돈의 시대에 가치관이 다르다면 상대를 수용하기도 힘이 들 것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시대 … 그래도 비슷함의 숨결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행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윌리가 되어서도 알브레히트를 지키려는 지젤의 사랑은 숭고했다. 알브레히트 또한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했지만, 비.겁.했.다. 정반대의 성질을 가졌지만, 애절하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절절한 비극이 담긴 2막의 파드되(pas de deux; 흔히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지젤은 비극이지만 숭고하고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두 주인공은 어쩌면 보통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겪은 행운의 인생이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아름다움도 좋지만 그런 인생의 불운이 닥치기 전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이야 말로 이 발레의 감동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모두가 직접 보고 각자의 아름다움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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