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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프리뷰&리뷰

[공연 후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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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8년 만에 다시 만나는 무대 위의 불륜작품(?)

어제 삼일절 대체 휴일에 정말 오랜만에 뮤지컬을 관람했습니다. 작품은 톨스토이 원작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그동안 클래식 공연 위주로 다니다가 오랜만에 대형 뮤지컬을 보니, 초반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오페라처럼 성악적인 발성이 극장을 가득 채우는 방식과는 달라, 무대 음성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작품이 많은 화제를 모으는지 이해할 수 있는 무대였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관람후기와 기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기억남는 부분이 있었는 데 한 아이와 같이 보러간 분의 후기에는 아이가 “무슨 스토리 주제가 불륜이예요? 죄다 불륜이예요?”~~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ㅋㅋ 그렇다고, 톨스토이의 명작이 그런 이유로 오래 기억될리는 없겠죠.

원작은 단순한 불륜 비극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도덕, 체면과 진실 사이에서 갈라지는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안나는 사랑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 사회적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파멸로 향합니다. 예전에 발레 버전을 보며 느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사랑이 가장 순수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감정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감정이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얼마나 잔혹하게 짓눌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발레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대사 없이 몸의 긴장과 군무로 불안과 욕망을 표현했습니다. 열차 장면은 운명과 파멸의 상징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는데, 이번 뮤지컬에서는 그 열차 상징이 노래와 조명, 무대 전환을 통해 비교적 직접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발레가 감정을 응축해 보여주었다면, 뮤지컬은 감정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메인 역할을 맡은 옥주현 배우의 존재감은 무대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작품이지만, 무대 위에서의 장악력만큼은 분명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키티 역과 소프라노 패티 역이 더욱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키티는 원작에서 순수함과 성장의 축을 담당하며, 안나와는 또 다른 방향의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파괴로 향하는 사랑과 시간을 통과하며 단단해지는 사랑의 대비가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인데, 이번 무대에서도 그 대비가 비교적 잘 드러났습니다.

공연 후 다시 떠올려보니, 원작에서 레빈의 존재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나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점 무너져가는 동안, 레빈은 삶과 신앙, 노동과 가정에 대해 고민하며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레빈과 키티의 시골생활을 나타내는 풀베기 장면은 발레에서 뿐만 아니라 뮤지컬에서도 아름답고 여유로운 부분이었습니다. 뮤지컬에서는 러닝타임의 한계로 이 축이 많이 압축되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나의 비극이 더 선명하게 부각된 느낌도 있었습니다.

공연 중 'MC' 역할은 대중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극의 흐름을 잠시 끊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넘버에서는 감정이 더 응축되어 안나의 고독과 파열이 깊이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발레에서처럼 말없이 무너지는 순간의 정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접한 대형 뮤지컬로서 충분히 화려했고 드라마틱했습니다. 클래식 공연과는 또 다른 방식의 에너지였고, 음악을 감상하기보다는 이야기를 체험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같은 원작이 소설, 발레, 뮤지컬로 이렇게 다르게 구현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인의 구원이 될 수도, 파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장르를 달리하며 다시 마주한 〈안나 카레니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 무대였지만 그래도 클래식으로 돌아가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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